누가복음 1장 26절부터 38절까지의 말씀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를 고지하는 내용입니다. 처녀인 마리아에게 있어서, 이 모든 일들은 믿기 힘든 일이며 감당하기 힘든 일이지만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으로 읽고 주석과 해설을 참조하여 묵상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주석 및 해설 정리
누가복음 1장 26절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천사 가브리엘이 … 동네에 가서
타복음서와는 달리 누가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 시절을 소개하기에 앞서 침례 요한의 출생과 유년시절을 병행하며 소개하는 치밀감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예수와 관련된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음을 나타낸다. 이제 본 절로 부터는 예수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갈릴리 나사렛
나사렛(Nazareth)이라는 동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먼저 갈릴리 지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받아볼 데오빌로나 그 외 이방 사람들은 작은 나라의 작은 마을인 나사렛이 어느 지방의 어떤 곳인지 잘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사렛은 앞에 언급된 예루살렘과 비교가 된다. 천사는 호화롭고 화려한 대도시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외진 마을을 찾아갔다. 여기서 우리는 요 1:46에 기록된 나다나엘의 말을 기억할 수 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극단적으로는 이렇게까지 취급받던 동네가 나사렛이다. 예수는 공생애 이전의 삶의 대부분을 이 지역에서 보내셨다. 이 마을은 예루살렘 동북쪽으로 약 70마일 떨어진 이스르엘 또는 에 스드라엘론(Esdraelon) 평야 북편의 깊은 산 계곡에 위치해 있다. 나사렛 뒷편에는 레바논과 언제나 눈이 덮여있는 헬몬산이 있고, 다른 쪽에는 푸르고 높은 갈멜산이 위치했는데 이 산은 지중해와 맞닿아 있다. 현재는 이 지역을 ‘엔 나시라’(EN Nasirah)로 부른다(Geldenhuys).
누가복음 1장 27절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요셉이라 … 마리아라
요셉과 마리아의 약혼은 천사가 나타날 때까지 잘 지켜지고 있었다. 유대 관습에 따르면 결혼하기 1년 전에 약혼한다. 샴마이(Shammai)학파는 약혼한 여인의 부정은 사형으로 처벌된다고 했다. 그리고 혼전의 성관계도 물론 용납되지 않았다. 또한 약혼 기간 내에 신랑이 사망할 경우 신부는 과부로 간주되기도 했다. 본 절과 29, 34절 등에서는 마리아의 처녀성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강조는 약혼 이후에 마리아가 더욱 더 조신(操身)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음을 부각시킴은 물론이고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확증시키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처녀[헬, 파르데논]
이 단어는 원형이 ‘파르데노스’로서 ‘미혼녀’, ‘소녀’라는 뜻이다. 성경 외적 문헌에 의하면 이 말이 동정녀만을 뜻하지 않고 단지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후 문맥과 특히 34절에 수록된 마리아 자신의 고백으로 미루어 볼 때,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의 동정녀를 뜻한다.
한편, 마태복음에는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알려준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알려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가브리엘 천사는 두 사람에게 다 나타났을 것이다. 그럼 왜 마태와 누가는 각각 한 편씩만 기록하였을까?
이것은 마태와 누가의 강조점의 차이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태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법적으로 다윗 왕가의 가계를 이어받은 요셉의 자손으로 인정하고 있다. 요셉은 의로운 유대인의 전형이며 예수의 아버지로서 아들의 이름을 명명할 권리도 부여받고 있다(마 1:21). 족보도 요셉의 법적인 족보를 따르고 있으며(마 1:1-17),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할 때도 천사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지시하고 있다(마 2:13).
그러나 누가는 법적인 관계보다는 혈통을 더 중히 여긴 것처럼 보인다. 누가에게 있어서 예수 탄생의 주인공은 단연코 마리아이다. 요셉은 별다른 역할이 없다. 수태고지(受胎告知)의 기사도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만 기록되어 있다(눅 1:26-38). 예수라는 이름을 지으라는 부탁도 마리아에게 하고 있다(눅 1:31).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는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눅 2:16) 보라고 말하면서 마리아를 요셉보다 먼저 언급하고 있다.
결례식 때 성전에서 시므온은 특별히 마리아에게 장래 일을 말해 주고 있다(눅 2:34-35). 족보도 마태복음에 나오는 요셉의 족보와 전혀 다른 것으로 봐서 아마도 혈통상 친어머니인 마리아의 족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눅 3:23-38). 누가는 예수를 다윗 지파의 후손 즉, 유대인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그 기원이 하나님께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낸 것이다.
누가복음 1장 28절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은혜를 받은 자여 … 함께하시도다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나타난 것(8-24절)과 같이 마리아에게도 나타난다. 사가랴의 경우와 마리아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났을 때에는 평안과 주의 임재의 인사를 하지 않은 반면에(8-24절) 마리아의 경우에는 이 같은 천사의 인사가 있던 점이 차이가 난다. ‘은혜를 받은 자’에 허당하는 헬라어 ‘케카리토메네은 그 어원이 ‘은혜’를 뜻하는 어근 ‘카리스’에서 온 말로서 완료 분사형으로 쓰였다. 이 완료 분사는 강한 현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정확한 의미는 ‘은혜를 받은상태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Lenski). 한편 천사와 마리아 간의 대화는 세차례에 걸쳐 전개된다. 1차 대화에서는(28, 29절) 천사의 은혜로운 인사와 이에 대한 마리아의 당혹감이 나타나며, 2차 대화(30-34절)에서는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천사의 재확인과 마리아의 설명 요구가 뒤따른다. 그리고 3차 대화(35-38절)에서는 천사의 대답과 마리아의 순종을 보여준다.
누가복음 1장 29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생각하매(디엘로기제토)
이 말은 원래 ‘별개의 논거(論據)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합하다’, ‘추론하다’라는 뜻이며 반대할 의사가 없음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리아는 놀라는 한편 모든 일들을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의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30절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천사가 … 무서워 말라
사가랴의 경우는 천사가 나타나는 순간 놀라고 무서워했으나(12절)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를 듣고 무서워했다. 역시 두 상황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얻었느니라(휴레스)
이 말은 ‘발견하다’라는 뜻을 가진 ‘휴리스코’의 단순 과거형이다. NIV는 이를 ‘발견했다’(have found)라는 현재 완료형으로 번역했고 렌스키(Lenski)는 ‘이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발견되는 것이지 결코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나 공로를 요구하지 않는 채 주어진다(엡1 :6). 그러나 언제든지 주어지는 그 은혜를 발견하느냐, 못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여기서 헬라어의 단순 과거형이 사용되었음을 보아 마리아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미 은혜를 받은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1장 31절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라 하라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의 뜻인 히브리어 ‘예호수아’의 헬라음으로서 이 이름은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출 24:13, 삼상 6:14, 왕하 23:8, 대하 31:15, 학 1:1, 슥 3:8). 이 이름은 주후 2세기 초까지 흔하게 사용되었으나 2세기 이후부터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행 13:6, 골 4:11). 이는 아마도 의식적으로 그 이름의 사용을 꺼렸기 때문인 것같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내며 이 이름의 기독교적 의미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한 마 1:21에서 잘 나타난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여타의 다른 인물들과 그분을 구별하기 위하여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마21:11), ‘다윗의 자손’(마 27:37, 막 10:47-48, 요 18:5) 등의 문구를 덧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누가복음 1장 32절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큰 자
이 구절은 15절과 대구를 이룬다. 가브리엘은 요한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예수께 관해서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어투를 사용한다. 요한에 대해서는 다분히 제한적 어투를 사용했으나 예수께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매우 경외로운 표현을 사용하였다(Liefeld).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휘오스 휘프시스투)
예수께서 신적 기원(divine origen)을 지닌 메시아이심을 단적으로 증거하는 말씀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35절에서도 나오는데 양자 모두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단어는 70인역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의 명칭, 특히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는 모두 아홉번 사용되었는데 그 중 일곱번을 누가가 사용했다(본 절, 35, 76, 2:14:35, 8:28, 19:38).
그 조상 다윗의 왕위
당시의 대중적인 메시아 칭호는 ‘다윗의 자손’이었다. 예수의 호적상 아버지인 요셉의 족보를 더듬어 올라가면 예수는 다윗의 혈통임을 확인 할 수 있다(3:31). ‘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드로논’은 ‘등받침이나 팔받침 또는 발등상을 갖춘 높은 의자’를 가리킨다. 또 이 단어의 복수형은 왕이나 신의 권능을 의미할 수도 있다(골 1:16). 여기서 다윗의 위는 왕되신 메시아의 보좌를 상징하는 다윗 왕의 보좌를 가리킨다. 요컨데, 예수는 예언된 바 그대로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사(삼하 7:12-16, 시 89:29, 132:11, 사 9:7) 다윗 왕권을 통해 드러내 보이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온전히 성취하신 것이다.
누가복음 1장 33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영원히(아이오나스)
‘시대’, ‘영원’ 등의 뜻인 ‘아이온’의 복수 목적격이다. 이 단어는 때때로 ‘오래 전부터’(70절), 혹은 ‘창세 이후로’를 뜻하기도 하나, 특정한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영원성과 결부된 문맥에서 잘 쓰인다(55절, 요 6:51). 특히 이 단어는 복수형으로 사용될 때 ‘영원성’에 대한 암시를 두드러지게 나타낸다(마 6:13, 롬 1:25, 히 13:8, 유 1:25, H. Sasse, TDNT. I, 197-209).
야곱의 집(오이콘 야콥)
‘집’에 해당하는 ‘오이콘’은 ‘오이코스’의 단수 목적격으로서 ‘집’, ‘가족’, ‘가문’, ‘종족’의 뜻을 나타낸다. ‘야곱의 집’이라는 표현은 행 7:46에도 나타나며 그 의미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나타내지만 더 정확히는 영적 이스라엘로(마 3:9, 롬 10:10-13)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드는 모든 성도들을 의미한다는 견행에 많은 학자들이 공통된 입장을 취한다(Lenski, Geldenhuys, 이상근).
왕 노릇
다윗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으로써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통치자가 된다는 의미이다(고전 15:25, 계 11:15).
그 나라(바실레이아스)
‘왕국’의 의미를 담고있는 이 단어는 때때로 ‘왕권’, ‘왕정’, ‘통치’ 등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의와 사랑에 의해 통치되며 의와 평강과 희락(喜樂)으로 가득한(롬 14:17) 하나님의 나라에 다름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관해서는 막 1:15의 주제 강해에서 다루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그리스도께 넘겨 주셨고(22:29), 우리를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골 1:13).
무궁하리라(우크 에스타이 텔로스)
‘무궁’을 나타내는 ‘텔로스’는 ‘끝’, ‘목표’,’정지’ 등의 뜻을 가지며,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우크’와 함께 사용되어 ‘정지되지 아니하리라’ 또는 ‘끝이 없으리라’는 뜻을 나타낸다. ‘영원’과 ‘무궁’을 연이어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의 영원성과 무한성을 강조하고 있다(시 45:6, 단 2:24, 7:14, 요 12:34, 계 11:15).
누가복음 1장 34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알지’에 해당하는 ‘기노스코’은 히브리어에서 성적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 ‘야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창 4:1, 19:8, 삿 11:39). 이 동사는 현재 시상으로 사용되어서, 과거의 모든 행동을 포함한 현재의 상태를 나타낸다. NIV는 이 부분을 ‘나는 처녀이니’(since I am a virgin)라고 번역한다. 즉, 과거에나 지금 이 순간에나 아무 남자도 알지 못한 처녀임을 말해 준다(Liefeld). 그러나 이 구절을 놓고 로마 가톨릭이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녀로서 지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에겐 육친(肉親)의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마 12:46, 막 3:31, 32).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의심하여 표적을 구한 사가랴와는 달리(18절) 마리아는 표적을 구하지 않고 성취 방법을 묻는다(18절 주석 참조). 천사의 수태 고지(announcement)를 듣고서 처음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이 었었기에 이제 마리아는 천사의 전언(傳言)을 오히려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누가복음 1장 35절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누가는 다시 성령을 언급하고 있는데, 1장, 2장에서만도 여섯번 이상을 언급한다(41, 67, 80절, 2:25, 26, 27). 유대인들은 모든 아이들이 출생하는 데는 세분히 동역자, 즉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요구된다고 생각하였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결코 아이를 출생할 수 없다고 믿은 것이다(Lenski, Barclay). 하지만 예수의 경우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셨다는 점에서 유일 무이한 기적이었다.
능력(뒤나미스)
신체적, 지적, 영적 ‘힘’ 혹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신약의 여타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능력’에 대한 개념 또한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메시아가 밀접한 연관을 나타낸다(시 110:2, 사 9:5, 미 5:5). 이러한 능력은 일차적으로 왕적 능력이지만 선지자의 능력도 포함된다(17절, 24:19, 미 3:8, 행 7:12). 하지만 그리스도는 바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시라는 점에서 능력있는 선지자 이상의 존재이다. 이러한 점은 동정녀 잉태의 과정에서 성령과 지존자의 능력이 함께 하셨다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잉태되고 탄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 함께하였으며, 당신의 맡은 바 사명을 수행하실 때에도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친히 행해 보이셨다(4:14, 36).
덮으시리니(에피스키아세이)
‘그늘을 지우다’, ‘덮다’, ‘역사하다’라는 뜻을 가진 ‘에피스키아조’의 직설법 미래형이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나타내는 출40:38의 영광의 구름(the shekinah glory)을 암시한다(Robertson). 또한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변화산 관련 기사에서도 구름이 덮힌 사실이 묘사되었다(9:34, 마 17:5, 막 9:7). 이 기록들에서는 한결같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동일시하는 목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렸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태어날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본 구절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하나님의 아들
이 칭호는 예수께서 스스로 사용하시지는 않았지만 침례 받으실 때와 변화되실 때(막 1:11, 9:7) 들린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의해,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의해(마 16:16), 귀신들에 의해(막 5:7) 그리고 로마의 한 백부장에 의해(막 15:39) 불리워졌다. 예수께서도 하나님과 자신과의 부자(父子) 관게를 암시하신 적이 많다(마 11:27, 막 13:32). 하지만 예수는 단순히 한 아들이 아니라 유일하신 독생자이다(요 20:17). 아들과 아버지는 뜻과(요 4:34, 6:38, 7:28, 8:42, 13:3) 행위와(요14:10) 영생 수여의 면에 있어(요 10:30) 하나이다(요 5:19, 30). 이런점에서 이 칭호는 메시아적 칭호임과 아울러 성부와 성자께서 그 기원과 성품에 있어 동등하신 분임을 시사한다(요 3:16, 히 1:2).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마 4:3의 주석을 참고하라.
누가복음 1장 36절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네 친족
‘친족’에 해당하는 ‘슁게네스’은 ‘동족’ 혹은 ‘친척’이란 뜻이다.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엘리사벳은 레위인출신의 제사장 가문에 속해 있지만(5절) 그렇다고 하여 마리아도 레위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은 서로 다른 지파 사람들과도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출 6:23, 삿 17:7).
누가복음 1장 37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 없느니라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은 ‘생생한 목소리로 말해진 것’, ‘말씀’, ‘진슬’등의 뜻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동의어인 ‘로고스’에 비해 ‘계속적인’ 의미와 단일 개념을 강조한다. 한편 본 절은 창 18:14과 마 19:26에서도 나오는 내용으로서 천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로서 제시된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이 행치 않으시겠느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38절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의 계집종
‘계집종’을 뜻하는 헬라어 ‘둘레’은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의 단수 여성형이다. 이 표현은 자식을 간구하던 한나의 기도를 떠올리게 한다(삼상 1:11). 마리아는 자신의 임신 사실이 밝혀질 경우 자신에게 미치게 될 온갖 비난(非難)과 돌팔매질을 감수하고서라도 오직 하나님의 처분에다 모든 것을 맡기려는 심정을 이 말로써 표현한다. 또한 이는 하나님 앞에 선 인생의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의 이 고백은 엘리(삼상 3:18)나 다윗(삼하 7:25)의 전례를 연상시킨다(이상근). 마리아의 이 고백은 결코 가볍게 여겨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처녀 수태로 인해 파급될 문제는 엄청난 것이다. 요셉과의 파혼과 함께 부정한 여인으로 몰려 세인(世人)의 멸시와 지탄을 받아야 하고 자칫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의 마지막 말(37절)이 마리아의 가슴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이 처리하시리라는 굳센 믿음이 마리아의 심령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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