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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

[2025년 3월 둘째 주일 설교문] 갈라디아서 2장 16절,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 사순절 첫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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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노라"를 핵심 구절로 하여 율법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을 강조합니다. 세상의 기준에 얽매여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려는 율법주의의 그림자를 조명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참된 자유와 새 생명을 얻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누리는 참된 자유와 기쁨을 역설합니다.

 

[2025년 3월 둘째 주일 설교문] 갈라디아서 2장 16절,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 사순절 첫째 주일 설교
[2025년 3월 둘째 주일 설교문] 갈라디아서 2장 16절,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 사순절 첫째 주일 설교

 

 

갈라디아서 2장 16절,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1. 율법주의의 유혹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에서 벗어나 율법주의라는 미혹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갈 3:1)라고 탄식하며,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길에 들어섰는지 경고합니다. 마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갈증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시원한 물 대신 신기루를 쫓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율법의 행위를 더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은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강요하며, 이것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구원을 얻는 참된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율법이라는 잣대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재단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반박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며,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계시받은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쁘게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라고 선포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복음을 전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또한 바울은 2장에서 안디옥 사건을 예로 들며, 베드로조차도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보였을 때 그를 공개적으로 책망했던 일을 언급합니다. 그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노라"(갈 2:16)라고 선언하며,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강조합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빠진 율법주의의 유혹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율법주의의 그림자에 놓여 있습니다. 돈, 명예, 권력, 외모 등 세상의 기준에 얽매여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은 율법주의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우리는 그 은혜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율법주의의 그림자

 

갈라디아 교회가 겪었던 율법주의의 유혹은 오늘날 우리 삶에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마치 바울 시대의 유대주의자들처럼,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율법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규칙과 규범, 세상이 정해 놓은 성공의 기준에 얽매여 우리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살아갑니다.

 

돈, 명예, 권력, 외모… 마치 이것들을 얻어야만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세상은 속삭입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성공을 향한 욕망은 마치 심연과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불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아무리 애써도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허무함 뿐입니다. 율법주의는 우리를 참된 자유와 기쁨에서 멀어지게 하고, 끊임없는 불안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마치 낡은 옷처럼, 율법주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옥죄고 숨 막히게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SNS 속 화려한 모습들에 현혹되어 자신의 초라한 현실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혹은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을 비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율법주의가 만들어 낸 함정입니다.

 

율법주의는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힌 교만과 이기심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되려고 애쓰지만, 결국 죄의 무게에 짓눌리고 맙니다. 마치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율법의 노예가 되어 참된 자유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러한 율법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며,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인도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율법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십자가의 복음

 

갈라디아서 3-4장에서 바울은 율법의 진정한 목적과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밝히 드러냅니다. 그는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비추듯, 율법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고 복음의 진리를 선명하게 제시합니다.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강조합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기 위해 X-ray를 찍듯, 율법은 우리 내면의 죄악 된 본성을 드러내어 우리 스스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죄 아래 가두어 두는 '몽학선생'과 같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담당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성취하셨음을 선포합니다. 마치 죄의 짐에 눌려 신음하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율법의 저주를 끊어버리고,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킨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행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치 죄인이었던 우리가 사면장을 받고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과 같습니다. 이는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구약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구원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주어지기 오래전부터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는 자녀가 됩니다.

 

갈라디아서 3-4장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며, 그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4. 자유와 새 생명

 

갈라디아서 5-6장은 마치 험난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어떻게 누리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얻었지만, 이 자유가 방종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마치 넓은 초원에 풀려난 양떼가 목자의 인도 없이 흩어져 위험에 빠질 수 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참된 자유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마치 농부가 밭에 좋은 씨앗을 심고 가꾸듯,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사랑, 희락, 화평과 같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 때 나타나는 이기심, 분노, 시기와 같은 악한 열매들과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켜 줍니다. 마치 낡고 해진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의 죄악 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를 지을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유라고 말합니다. 마치 몸의 각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돕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으며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서로의 짐을 져 주며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6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와 새 생명에 대한 감격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